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자산어보 관람 후기. 학문의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문화생활 후기 2021. 4. 1. 23:42

    2021.4.1. 관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선구마사, 설강화 등 TV 드라마 속의 역사 왜곡이 논란이 되고 있는 중,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가 개봉했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황산벌을 시작으로 조선시대의 왕의 이야기를 그린 왕의 남자, 사도,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대의 동주, 박열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장이지요.

    자산어보는 조선말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에 유배온 정약전이라는 인물이 유배 생활 동안 해양 생물을 집대성한 저서입니다. 저는 신유술해나 목민심서를 쓴 정약용까지는 얼핏 알고 있었지만, 정약전이라는 인물과 자산어보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자산어보라는 서적을 역사 교육에서 비중있게 다룰 리가 없으니까 말이죠.



    이준익 감독은 이 생소한 인물이 집필한 자산어보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보여주면서 정약전과 창대라는 인물 뿐만 아니라 조선말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모습을 비춥니다. 철저한 계급 사회와 과도한 조세 제도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 매관매직을 통해 온갖 비리를 일삼는 부패한 관료들,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의 문물이 들어옴에 따라 기존의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한 기득권들... 그런 혼돈의 중심에서 밀려나 유배온 정약전은 자신이 가진 학문의 힘을, 해양 생물에 대한 높은 지식을 갖고 있는 창대와의 거래를 통해 '자산어보'를 집필합니다.

    정약전은 자신이 가진 뛰어난 학문의 힘을 통해 보다 더 넓은 세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기존의 계급 구조가 사라진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바다에 둘러싸인 흑산도라는 외딴 섬은 고립된 곳이 아니라 오히려 다채로운 해양생물로 가득한 미지의 새로운 세계였을 것입니다.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넘치던 조선 후기, 결국 조선이 어떤 파국을 맞이할지는 다들 알고 있습니다. 창대는 학문을 통해 출세를 하지만, 부패한 조선 후기 사회의 민낯을 목격하며 학문의 진정한 가치는 기존 사회 구조를 견고히 하거나, 출세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보다 사람들을 더 풍요롭게 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 국가의 간섭과 역사적, 문화적 갈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모두가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는 요즘, 때마침 오래간만에 나온 이 웰메이드 사극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님과 제작진들, 그리고 배우분들에게 모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이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제가 극장에서 흑백영화를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흑백이기에 더욱 더 와닿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역사성, 흑백이기에 더욱더 선명하고 역동적으로 드러나는 바다의 물결과 파도, 그리고, 흑백이기에 더욱 더 선명하게 보이는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통해 흑백영화의 진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