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소규모로 개봉했기에 내가 사는 곳에서는 개봉 당일 단 한 곳의 상영관에서 하루에 단 한 번 상영했는데, 왠지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바로 영화를 보러 갔지요.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입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곧 이 영화는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연출이 없다는 뜻입니다. 상영시간도 약 100분 정도로 비교적 짧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매우 잔인하고 자극적인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검은 배경과 함께 영화 제목이 나오는데, 제목이 서서히 흐려지더니 이윽고 새까만 화면만 불안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과 함께 약 1분 동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소리’에 집중하라는 의도를 넌지시 알려줍니다.
-영화는 매우 무난하게 흘러갑니다. 넓은 정원이 있는 거대한 저택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7인 가족의 모습이 나옵니다. 특별한 사건 같은 것도 없고, 화면 구도도 대부분 인물들의 모습을 멀리서 촬영한 게 대부분이라서 사람들 얼굴도 쉽게 기억되지 않고 마치 CCTV로 촬영한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음향이 없다면 말그대로 평범한 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소리’에 집중해야 하는 영화입니다. 평범한 한 가정의 일상 모습과 대비되는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울려퍼집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총소리, 구타하는 소리, 의문의 충격음까지… 아기는 그 소리에 적응하지 못해서 계속 울부짖듯이 울기만 합니다.
-하지만 담장 너머에 있을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유대인들의 모습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담장 너머로 수감소의 윗부분과 옥상이 보이거나, 가끔 굴뚝에서 ‘무언가’를 태우면서 나오는 ‘연기’만 보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잔인하고 소름끼칩니다.
-주인공 가족들의 대화와 행동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듯이 유대인 학살을 이야기하고, 온갖 ‘소음’에도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은 정말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발령‘문제도 그저, 직장에서 발령 문제로 인식되지 학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흐름을 잠시 끊으며 한숨돌리듯이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그 특유의 연출 방식에 따라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수많은 평론가들과 다른 영화인들이 이야기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다룬 홀로코스트의 ’현실‘은 후반부, 역사적 자료로서 남겨진 흔적과 유물을 통해 잠시 보여지다가 이윽고 비명소리와 같은 압도적인 음악과 함께 끝맺어집니다. 천천히 글자가 올라오는 지극히 평범한 엔딩크래딧 화면일 뿐인데도 배경음악과 함께 불쾌함이 극한에 치닫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저를 엔딩크래딧을 볼 수 집중해서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제한된 정보를 통해 인류역사상 최악의 학살 사건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거리를 풀어내도록 만드는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전쟁이 몇년째 지속되고 있고, 가자지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고 있으며, 우리 한반도 역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위험 속에 놓여 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는 내내 느꼈던 그 불안감이 마치 현실에도 지속되는 것 같아 순간 소름이 끼쳤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매우 소규모로 개봉한 영화이지만 개봉 당일 이미 관람객 1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평론가들의 호평과 입소문이 더 확산된다면 상영관이 더 확대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 영화가 가진 음향 효과와 임장감은 반드시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