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델로'라고 하는 보드게임이 있다. 8x8, 총 64칸으로 구성된 보드판 위에 양면이 흰색과 검은색으로 된 말을 가지고 진행하는 보드게임이다. 직선 또는 대각선 끝에 자신의 색깔과 같은 말이 있는 곳에 자신의 말을 올려놓을 수 있으며, 그 사이에 있는 상대편 말은 전부 자기 것으로 뒤집어진다. 처음에는 한 두개만 뒤집어질 뿐이지만, 중후반을 넘어가게 되면 한 번에 보드판의 절반이 뒤집어지는 대역전극이 반복된다.
인터넷에서 댓글을 통해 펼쳐지는 키보드 배틀, 키배도 오델로와 다를 게 없다.
처음에는 사소한 댓글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곧 누군가가 그 댓글의 내용을 부정하는 댓글을 단다. 처음 댓글을 달았던 사람은 이에 다시 그것을 부정하는 댓글을 단다. 처음엔 단순히 의견을 표현하고, 그것을 반박하던 것이 어느샌가 비난과 조롱이 섞인 인신공격이 들어가고, 논리적 오류를 무시한 온갖 억지와 궤변이 난무하게 된다. 이렇게 댓글이 하나 달릴 때마다 흑과 백이 뒤집어지듯이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오델로처럼 무대가 8x8로 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 무한이다. 일 대 일 게임도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참가한다. 중구난방 속에서 맨마지막에 댓글을 단 사람의 승리다.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거나 상대하지 않는 것을 도망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댓글을 그만두는 쪽은 그걸 포기나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싸움 자체를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그리고 다시 또다른 곳에서 댓글을 달고 게임을 시작한다.
이런 행위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재밌으니까. 화가 나니까. 쟤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 이유는 제각각 다양하겠지만 모든 게임과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다. 내가 특정한 답을 내려서 인터넷에 올려놓으면 누군가가 반박하는 댓글을 달고 내가 다시 그것을 상대하게 될 것 같으니, 나는 여기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