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글을 내건 대학교 커뮤니티의 '에타'나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 중에서 자주 논란이 되거나 사람들을 광분케 하는 어그로성 글의 대다수는 '학력과 계급'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이야기다.
너무나 순수하게 '부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남 대치동에서 학력을 쌓고 어릴 적부터 수많은 외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견문을 쌓았지만, 내 손으로 스스로 한 것은 학력말고는 아무 것도 없으니 나는 흙수저다.'라고 주장하거나, 자기보다 못사는 사람들이나 열악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복지 대책과 비용을 비난하며 '사회의 기생충'이라고 멸시하거나 '역차별'이라며 강력하게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빈부격차와 학력차이가 사회 전반에 깊숙히 자리잡은 상황 속에 이미 흙수저와 금수저의 수저론 사람들의 머릿 속에 각인된지 오래고,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도 옛말이다' 자체가 옛말이 되어버렸다.
이런 추태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바로 '능력주의'에서 비롯된다. 사회 속의 불평등과 현실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의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맹신하는 사회 구조, 감사와 겸손이 사라지고, 사회 공동체로서의 의식과 배려도 희미해진 지금 이 상황의 원인이 바로 '능력주의'다.
이번에 읽은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은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최신간으로서, 능력주의를 전면적으로 비판하며 분석하고 있다.
과거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가 바로 '능력주의'를 내세우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등 엘리트 계급에 대한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반감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능력주의를 내세우며 엘리트로서 가지는 오만적인 시선으로 사회를 내려다보는 시각에서 진행된 정책과 행보는 사회 속 불평등이 심화되고, 세계화에 대한 반발, 국민의 정체성과 애국심 약화 등 민중의 반감으로 이어졌고 공동체 의식이 저하되며 연대감이 약화되며 미국 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결과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마이클 센델 교수는 이런 능력주의를 논하며, 종교의 구원론, 교육과 학력주의, 복지사회, 세금 구조 등 능력주의의 탄생과 진행과정을 넓고 깊은 시각으로 풀어나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한국에서는 어떻게 능력주의가 자리잡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능력주의적 시각으로 한국 사회의 역사와 구성이 재정립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능력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바로 '운과 환경을 바탕으로 능력주의에 힘입어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정당화하면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오만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깔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사회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며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피해는 사회 전체로 반영된다. 이런 불평등은 결국 승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지고 합리화되고 현실을 왜곡시킨다.
예를들어, '자신은 5000만원의 이상의 연봉을 받고 일하고 있지만 서민이다.'라고 말하거나, '건물을 몇 채 이상 갖고 있는 건물주이지만 치킨 먹을 때 양념 먹을지 후라이드 먹을지 고민하며 종부세에 괴로워하는 서민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혜택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평범'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은 순전히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정당화한다. 그런 시각 속에서 오히려 열악한 현실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 버린다. 항상 이런 식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당연시하는 '능력주의적 시각'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IMF 이후 광고에서 '부자되세요~'라는 멘트가 유행어가 되고 누구나 부자를 꿈꾸는 사회가 되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오히려, 부유층과 권력층이 능력주의를 이용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데 쓰고,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눈을 돌리고 있다.
세상을 '능력주의'라는 좁은 안경으로 볼게 아니라,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성공 신화와 능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게 될 때 자신과 모두를 위한 올바른 공동체 연대의식을 가질 수있게 됨과 동시에 새로운 길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