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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시장의 자살: 위안부 변호사와 일본에서 기부받았다는 '반일, 친일'의 두 얼굴.
    번역 2020. 7. 12. 10:48

    서울시장의 자살: 위안부 변호사와 일본에게 기부받는 '반일, 친일' 2개의 얼굴.

    데일리 신조

    -성희롱 고발자가 계속되는 'Me too 의혹'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로서 그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박원순 서울시장. 성희롱 사건에 휘말리고 나서 불과 하루만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향년 64세. 2011년부터 3기 연속, 서울 시장으로 일해온 박 씨는 최근 여론 조사에서 60.5%의 지지율을 얻고 시정에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초부터 계속되어 온 반일 태도를 취해온 대표적인 정치가로서 알려진 그는, 한편으로는 일본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등 친일의 얼굴도 있었다.

    인권 변호사로 시민운동가 출신이기도 한 박시장은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서 법적 지원 활동에 주력했다. 그 기세로 서울 시장에 당선된 후, 위안부 소녀상의 건설에 따라 대중의 반일감정을 부추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박 시장은 과거 자신이 설립한 시민단체에 토요타로부터 거액의 지원금을 받은 사실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 친일파로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경찰에 의하면 7월 9일, 행방불명 된지 7시간 후에 발견되었다. 사실 8월에 전 비서인 A씨가 성희롱의 혐으로 박시장을 서울 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게다가 박시장이 성희롱을 행한 피해자는 그 외에도 있는 것이 예상되는 것으로부터 'Me too의혹으로 불리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그의 경력을 소개해보자. 경남 창녕 출신으로, 당시 엘리트 필수 코스라고 불린 'KS라인(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에 진학했으나,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학생 운동에 참가한 결과, 서울대학교에서 1975년에 제적되었다. 제적된 다음 해 단국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1980년 제22회 사업 시험에 합격하여, 대구지검검사에 임용된 후 곧 사임하고,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1994년에는 한국진보시민사회의 기초가 된 참여연대를 설립. 그 후, 주주운동과 부정부패후보자 낙성운동 등 정계에 충격을 주어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을 창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초부터는 재단법인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를 개설하여 이사로서 기부 운동, 민간연구소의 양성에 힘을 쏟았다. 물론, 그를 말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표적인 반일 정치가, 위안부 변호사로서의 얼굴이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집요하게 주장해 온 인물 중 한 명임은 틀림없다.

    2000년 국제인권 캠페인 '여성국제전범법정'에 참가하여 남북공동검사단의 검사로서 참가한 후, 일본 천황을 종군위안부강제성노동착취전범으로서 기소했다. 당시 박 시장은 '한반도에는 10만명 이상이 종군위안부로서 동원된 최대의 피해국가이며, 식민지 지배가 그 배경이었다.'라고 말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라며 일본 천황의 처벌과 일본 정부의 배상을 강하게 요구했다.

    -'가해자(일본)은 먼저 사죄해야 한다.'라고...

    2011년 서울 시장에 당선된 직후엔 12월 31일 심야. 보신각 행사에 '위안부' 패하자를 초대한 적도 있다. 2013년 6월에 서울시에서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관한 조례를 결정하고 매월 7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결정을 내려 주목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2018년 7월에는 일본종군위안부관부재판문제를 다룬 영화 '허 스토리'를 관람. '아직 일본으로부터 사죄 받지 않은 중, 일본은 항상 애매한 태도로 위안부 문제를 끝내려고 하고 있다'라며 '가해자(일본)은 먼저 사죄해야 한다. 과거를 깨끗하게 청산하고 첫 평화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2019년 2월에 열린 3.1운동 100주년을 기념 '기록의 기억:일본종군 위안부의 이야기, 누구도 들은 적 없는 이야기'전의 개관식에서는 일본정부를 직접 지명하며 '피해자의 관점에서도 아픔을 위로하고 사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한국 국내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활발하던 8월, 서울시는 '일본종군위안부피해자를 칭하는 날'을 맞이하여 서울 남산 근처에 있는 조선신궁 앞에 실물 크기의 위안부상을 세웠다.

    당시 박 시장은 '서울 기념비는 역사교육의 현장이 된다.'라는 소감을 분명히 했다. 박시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1986년 설립된 좌편향 역사 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냈다. 한편, 야당의 주장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에 의한 고 박길보 씨는 일본의 식민지 시절, 조선인의 일본군징용, 위안부 동원을 선두로 세웠던 친일파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국세청에 의하면, 앞서 다룬 '아름다운 재단'은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 한국 토요타 자동차 자동차와 토요타 재단으로부터 총액 6억원 정도를 수력. 당시 일본에 있었던 '희망제작소'도 토요타 재단으로부터 450만엔을 받았다고 한다. 토요타라면 렉서스. 2019년 8월 이후 박시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본제품의 불매를 주장했는데 안좋게도, 승차하고 있는 차가 렉서스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 불매 운동에 더해서 '일본의 전범기업'의 제품을 알 수 있게 하는 스티커 운동도 촉진. 스티커에는 '이 제품은 일본의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다.' '일본의 전범기업과는 대일항쟁 당시 강제동원 등에 의해 우리나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피해를 준 기업이다.'라고 한국어로 쓰여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집요하게 거론하자 미디어에서는 '렉서스는 시장 친구의 차량'라고 수정한 적도 있다. 정치력을 발휘한 결과일까?

    반일, 혐일을 기반으로 지지를 얻고 대통령 후보까지 오른 것은 좋았지만, 한꺼풀 벗기면, 일본의 색이 묻은 헌금을 받고 있엇다. 사리에 맞지 않는 인생을 보낸 것은 의심없는듯 하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cce8c4cc6a2d4fd586e317cee3d366f56b6fc4a2&page=2


    일본 언론은 유명인사가 죽어도 친일, 반일인지 알아내는데만 급급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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