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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 관람 후기. 이렇게 사람 기빨리는 영화는 처음이다.

HANBINIZM 2019. 7. 11. 18:24



영화 유전을 매우 인상적으로 봐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영화. 한 낮의 초원 속 마을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라고 하길래 도저히 어떤 내용일지 갈피를 못잡았는데, 영화평을 보니까 너무 잔인하고 호불호가 갈린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고 VOD 나오면 보려고 했다가 미묘한 이끌림에 이 영화를 결국 보고야 말았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어느 주인공이 남자친구의 친구 중 한 명의 소개로 스웨덴에 있는 어느 마을의 행사에 참가하게 됩니다. 하루 중 어두운 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백야 속 마을에서 처음에는 환대 속에서 낯선 문화를 접하려고 하지만, 알면 알 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함 속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지요. 어쩌면 아주 뻔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미쳤습니다. 사람의 기를 완전히 빼버린다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수상한 전통을 지키며 외부인을 배척하거나 공격하는 낯선 공동체를 그린 공포 영화나 스릴러 영화는 주로 밤이나 숨겨진 지하실에서 본격적으로 전개가 이루어지는데 여기서는 전부 낮입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시간대가 오전인지 오후인지도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마을 사람들도 흰색 위주의 밝은 옷을 입고 있고, 숲 속에서 잔디가 펼쳐진 초원에 지어진 마을, 꽃으로 만들어진 장식, 흰색 테이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 사람들이 부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분한 노래. 어떻게 보면 너무나 평화로운 요소일 뿐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본격적인 마을의 행사가 진행되고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속에서 머물 수 밖에 없는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사람의 기를 완전히 빼놓더군요. 저는 평소에 영화를 볼 때 방해 받는 것을 싫어하고, 시계를 절대로 안 보는데- 저는 이 미드소마를 관람하면서 중간에 몇번이나 안경을 벗어서 일부러 화면을 희미하게 보고, 귀를 반 쯤 막고, 시계로 현재 시간을 확인했는지 몰라요…

극단적인 내용인만큼 감독의 전작 '유전'만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보고나서 이게 뭐냐고 욕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여운은 꽤나 오래갈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 나타난 다양한 그림을 비롯한 메타포(?)는 꽤나 곱씹어볼만합니다. 아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중간에 아주 멋진 센스로 꾸며진 자막이 나옵니다. 그래서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번역을 황석희 님이 맡으셨더군요. 반가웠습니다.